다산초당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했다고 한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이 해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았고. 

건물은 도리단층 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년, 1971년,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초당에 있는 다산의 초상화는 2009년에 강진군의 추진사업으로 새로 그려졌다고 하는데

아무리 고증을하고 후손들의 관상까지 참조해서 그렸다고 하지만 너무 현대적으로 그렸더라...

도무지 그당시의 시대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관상이더란 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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